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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발자취

역사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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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시 송산동(松山洞)에 관한 유래

경기도 의정부시에는 송산동(松山洞)이 있으며 인근 민락동(民樂洞)에는 송산사(松山祠:경기도 문화재 제42호)가 있다. 송산이라는 지명이 생기게 된 유래는 고려 말 충신 조견(趙견)이 조선조에서 내린 벼슬을 받지 않고 이곳에 은둔하면서 말년을 보낸 곳이라 하여 공의 호를 따서 송산(松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견(趙견:1351~1425년)은 자가 거경(巨卿)이고 호는 송산(松山)이다. 태어난 이듬해에 부친(德裕)께서 돌아가셔 편모슬하에서 성장하던 중 어려서 승문(僧門)에 입문하여 여러 절의 주지로 재임하였다.

그러나 30세가 넘어 환속(還俗)하여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고려 말 지신사(知申事:正三品)로 있을 때 이성계를 추종하는 무리에 의하여 영남안렴사((嶺南按廉使:道知事)로 내몰렸다. 고려가 망하자 공께서는 벼슬을 버리고 두류산(지금의 智異山)으로 들어가 이름 윤(胤)을 견(견)으로, 자(字) 거경을 종견(從犬) 으로 개명하고 은둔하고 있을 때 이태조가 인편으로 호조전서(戶曹典書)의 벼슬로 새 정부에 나와 주기를 간청하였으나 “수양산에 고사리를 캘지언정 성인(聖人)의 백성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이를 거절하였다.

공은 다시 청계산으로 옮겨 은둔하다가 수락산 기슭의 양주고을(지금의 의정부시 송산)로 거처를 옮긴 후 그곳에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정신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하였으며 두문동(杜門洞) 72현(賢)의 한분으로 두문동서원에도 배향되었다.

또한 의정부시 민락동에 세워진 송산사(松山祠)는 정조 22년(1789년)에 삼귀서사 (三歸書社)를 세워 조견(趙견)과 원선(元宣), 정구(鄭矩) 등 3선생을 배향하던 것을 1803년부터 송산사로 개칭하여 송산공을 주벽(主壁)으로 6선생의 위업을 기리기 위하여 매년 음력 3월 20일에 의정부시, 양주시, 포천시 등의 유림과 예손들이 제향을 올리고 있다.

공의 묘소는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 산 30번지에 있으며, 묘소는 성남시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되어 매년 11월 첫째 일요일에 후손들이 추향제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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