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世 봉익대부(奉翊大夫) 조방우(趙邦佑)
봉익대부(奉翊大夫) 문하좌(門下左) 산기상시(散騎常侍) 역임.
봉익대부(奉翊大夫) 고려시대 종2품 문관의 품계이고, 문하부는 고려 후기 최고정부기관이 중앙 관청으로 중서문하성의 후신이다. 고려말 관청명이 수시로 변경되었는데, 첨의부, 도첨의사사, 중서문하성과 상서성, 도청의부에서 1369년(공민왕 18)문하부로 변경되었다.
문하부(門下府)의 관원으로는 영문하(領門下), 문하좌·우시중(門下左右侍中),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참지문하부사(參知門下府事),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 좌·우산기상시(左右散騎常侍), 좌·우간의대부(左右諫議大夫), 문하사인(門下舍人), 좌·우사간(左右司諫), 문하녹사(門下錄事), 문하주서(門下注書) 등이 있었다.
산기상시(散騎常侍)는 고려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정3품 관직으로 주된 직능은 중서문하성 안에서 좌우간의대부(左右諫議大夫), 좌우보궐(左右補闕)·좌우습유(左右拾遺) 등과 함께 간쟁(諫爭)·봉박(封駁)의 임무를 가진 낭사(郎舍)의 우두머리로서 간관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따라서, 산기상시는 간관에게 부수되어 있는 수직자(受職者)의 고신(告身)을 심사하고 동의하는 서경(署經)의 권한도 가지고 있었다.
봉박(封駁)은 왕의 부당한 처사나 명령을 되돌리는 제도이다. 조선시대에는 사간원(司諫院)에서 주로 담당하였다.
가족관계
조방우(趙邦佑) 7世 조굉(趙宏)의 장남
배위는 장씨(張氏) 참봉 정(參奉禎)의 따님
장남 : 조륜(趙淪) 자헌대부(資憲大夫) 한성부사 겸 판 혜민국사(漢城府事兼判惠民局事) 역
2남을 낳았다.
1남 : 조희정(趙希鼎) 목사공파 파조 통정대부 제주목사 겸 제주 안무사(濟州安撫使) 역임.
2남 : 조을정(趙乙鼎) 병사공파 파조 전라병마절도사(全羅兵馬節度使) 역임.
주석1 : 전주최씨 문성공파 5세손 연촌공(烟村公) 최덕지(崔德之)라는 분이 계신데 배위가 평양조씨 조안정(趙安鼎)의 따님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조안정(趙安鼎)은 평양조문 대동보에는 기록이 없는 분이다. 8世 조방우의 두 아드님이 희정(趙希鼎) 을정(趙乙鼎)으로 솥정(鼎)의 돌림자를 사용하고, 솥정(鼎)의 뜻에는 삼공(三公)의 자리와 현귀(顯貴)하다 라는 뜻도 있으니 8世 조방우(趙邦佑)의 아드님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 평양조문은 1723년 계묘년에 후손분들이 가승으로 전해지는 족보를 처음으로 간행했으니 약 300년의 시간 차이로 후손이 없는 분들은 족보에 누락되었다고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이는 타 가문도 마찬가지이다. 6世 문극공(文克公) 조연수(趙延壽)와 6世 장경공(莊景公) 조위(趙瑋)의 묘지명이 근래에 발견되어 많은 내용을 대동보에 추가할 수 있었는데, 7世 전교부령(典校副令) 조굉(趙宏)과 8世 봉익대부(奉翊大夫) 조방우(趙邦佑)의 묘지명이 나오거나 새로운 기록이 나오기를 바래 본다.
9世 조안정(趙安鼎)의 사위로 추정되는 전주최씨 연촌공(烟村公) 최덕지(崔德之, 1384~1455)는 김제군수, 남원부사등을 지냈고, 문종 때 예문관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세종 때 배출된 많은 학자 중 한 분으로 정치적 격동에 휘말려 들지 않고 문신이자 학자로서 명예로운 삶을 마쳤다. 아들은 최조(崔凋) 최창(崔?) 최별(崔撇)이고, 자(字)는 우수(于叟) 호(號)는 연촌(烟村) 또는 존양당(存養堂)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전주의 서산사(西山祠), 남원의 주암서원(舟巖書院), 영암의 녹동서원(鹿洞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주석2 : 또한 전주최씨 문열공파(文烈公波)의 시조는 최순작(崔純爵)으로 배위(配位)가 평양조씨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평양조씨 대동보에는 기록이 없다. 앞으로 새로운 역사 기록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출처 : 평양조씨대동보, 조선왕조실록, 전주최씨중앙화수회, 한민족대백과사전.
작성 : 26세손 첨추공파 충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