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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내력

족보내력

족보의 의의와 유래(由來)

족보는 한 씨족이 내려온 가족의 계통을 기록한 책을 말한다. 족보는 시조(始祖)이하 계통을 따라 이름(諱) 호(號) 생졸(生卒/生歿)년. 월. 일은 물론 사적 공적(事蹟 功績) 등의 행적을 상세히 수록하여 한 씨족의 역사와 영속(永續)을 나타내는 것이며 종보(宗譜) 가보(家譜) 세보(世譜)로 쓰는 경우도 있다.

족보는 어느 나라나 처음에는 왕실의 계보(조선왕조 세보는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임)로부터 시작되었다 한다. 그리고 씨족의 족보가 발달한 시기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중국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의 족보는 문화유씨의 가정보(嘉靖譜:1522~1566)와 안동권씨의 성화보(成化譜:1476)가 가장 오래된 족보라 한다.

 

우리 족보의 발간과정

가. 족보 발간 기구의 구성
족보의 발간은 宗中의 조직이 결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하더라도 방대한 수보(修譜:족보를 만드는 작업)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별도로 전담기구의 설치가 필요하다. 평양조씨도 화수회(花樹會), 대종회(大宗會) 등의 종중(宗中)조직이 있었으나 족보 발간을 위하여 수보(修譜)기구 즉 족보 발간 기구를 별도로 설치하고 발간 업무를 전담하였다. 그리고 발간기구의 구성원은 덕망, 학식, 경륜을 가진 종인(宗人)을 선정하여 발간기구에 참여하도록 하고 발간방침과 예산 및 구체적인 발간 절차를 심의 의결하는 등 발간에 필요한 모든 업무를 전담한다.
족보 발간의 성패는 발간기구의 구성원에 있기 때문에 기구의 인적 구성은 매우 중요하다.

 
※ 1900년대의 族譜發刊機構의 예시(例示)와 構成員 對比表
 
1958년판 수보기구(修譜機構)   1994년판 발간기구(發刊機構)
문 장(門 長)   고 문(顧問)
자문위원/전문위원(諮問委員/專門委員)
도유사(都有司)   발간위원회위원장(發刊委員會 委員長)
총무/수단부위원장(總務/收單副委員長)
장화유사(掌貨有司)   재무부위원장(財務副委員長)
편집/교정부위원장(編輯/校正副委員長)
자문부위원장(諮問副委員長)
감사(監事)
사무국장(事務局長)
발간위원(發刊委員)
편집주간(編輯主幹)
편집간사/편집위원(編輯幹事/編輯委員)
교정도유사·교정유사(校正都有司.校正有司)   교정주간(校正主幹)
교정간사/교정위원(校正幹事/校正委員)
유사(有司) (수단:收單/ 발간임무 겸임으로 추정됨)   수단주간(收單主幹)
수단위원(收單委員)
 

나. 족보의 발간 현황
평양조씨의 족보는 1723년(조선왕조 景宗3년 癸卯)에 創刊하였으나 그 족보의 서문과 편집기준인 범례(凡例) 첫째항에 "옛날에 족보가 있었다."는 기록을 미루어 볼 때 언제 어떠한 형태의 족보가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선대(先代)에 이미 족보가 만들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체계를 갖추어 발행한 족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723년판 계묘보(癸卯譜)이다.
이와 같이 평양조씨 족보는 족보발간 연대표에 기술한 바와 같이 1723년 계묘보(癸卯譜)로부터 1994년 갑술보(甲戌譜)의 간행까지 모두 9회에 걸쳐 발간하였다.

 
회차\구분 발간
년도
통상 명칭 발간 시대 보책(譜冊)
구성(構成)
출판
형태
개·수보 기간
(改·修譜 期間)
발간인(대표자)
世·휘/명·派
1회 1723 계묘보 (癸卯譜) 조선왕조
경종(景宗) 3년
전 3권 필 사 (筆寫) 800년
전(前)·후(後)
18世 빈 <承>
2회 1791 신해보 (申亥譜) 정조(正祖) 15년 전 5권 " 68년 20世 교(嶠) <承>
3회 1802 임술보 (壬戌譜) 순조(純祖) 2년 전 4권 " 11년 20世 계 <承>
4회 1850 경술보 (庚戌譜) 철종(哲宗) 1년 전10권 " 48년 21世 의석(義錫) <承>
5회 1901 신축보 (辛丑譜) 고종(高 宗)
광무(光武) 5년
전14권 " 51년 22世 존우(存禹) <承>
6회 1928 무진보 (戊辰譜) 임시정부 전 8권 " 27년 23世 희문(羲聞) <承>
7회 1958 무술보 (戊戌譜) 대한민국 전10권 " 30년 24世 필현(弼顯) <承>
8회 1979 기미보 (己未譜) 대한민국 전 4권 4/6배판
양 장
21년 24世 백현(伯顯) <承>
9회 1994 갑술보 (甲戌譜) 대한민국 전 4권 " 25년 27世 한원(漢元) <正>
 

다. 족보에 담긴 내용
평양조씨 족보의 편성 내용은 족보의 내력에서 기술한바와 같이 왕실 족보인 선원계보(璿源系譜)나 다른 姓氏의 족보를 참고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편성 내용은 족보의 기본 틀로서 대단히 중요하다. 여기에서는 1723년판 계묘보(癸卯譜)를 기준으로 족보에 담긴 내용을 검토하기로 한다.

1) 세보의 서문(世譜 序文)
서문은 책의 첫 머리에 실리며 족보가 만들어진 과정을 기술하는 것으로 시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족보의 의의, 종족의 연혁, 만드는 이의 의도, 자손에 대한 희망 등을 쓰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서문은 다른 씨족의 유명한 사람에게 의뢰한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직계 후손의 학식 있는 이가 쓰는 것이 상례이며, 발간 횟수(回數)에 따라 신서(新序) 구서(舊序)로 구분하여 게재한다. 平壤趙門의 계묘보(癸卯譜)는 안동후인 권적(安東後人 權滴)과 파평윤씨 윤동수(坡平尹氏 尹東洙) 두 사람이 서문(序文)을 썼다.

2) 범례(凡例)
범례는 족보 편집의 기본방침으로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계묘보의 편집방침이 되는 범례(凡例)는 11개항으로 되어 있다.

3) 족인의 요건(族人의 要件)
족인(族人)의 요건(要件)은 족보에 수록하는 족인(族人)의 범위와 자격 요건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으로 계묘보는 범례 네 번째 항에 외손(外孫)의 경우 성(姓)을 쓰고 본관을 명시하여 성(姓)이 다른 것을 구분하도록 하였다.

4) 기 . 지 ( 記 . 誌 )
記 또는 誌는 성과 시조의 연원(淵源), 본관 취득의 경위, 분파의 내역, 훌륭한 선조의 전기, 언행록(言行錄), 묘지(墓誌), 연보 등 씨족의 역사에 포함하여야 할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하는 것으로 癸卯譜는 凡例 아홉 번째 항에 10파로 나누는 것과 열한 번째 항에 여사열전(麗史列傳), 정숙공지문(貞肅公誌文) 및 사당기(祠堂記), 첨의찬성사 묘지(僉議贊成事墓誌), 조씨임정기(趙氏林亭記), 송산사적(松山事蹟), 송산조공전(松山趙公傳), 양심당문집발(養心堂文集跋), 용문행장(龍門行狀) 등을 책 앞부분에 게재하도록 편집방침을 정하였다.

5) 기타사항
가계(家系), 세계(世系)의 계보표(系譜表), 사당, 종친의 규약, 가훈, 종훈(宗訓), 묘도(墓圖), 예문(藝文) 등이 포함되며 평양조씨 18파 파계도, 묘도 등이 이에 해당된다.

6) 발문(跋文)
족보의 끝에 족보 내용의 대강이나 족보 발간에 관계된 사항을 간략하게 적는 글이다. 평양조씨 족보 跋文 아홉 차례(9回)의 내용에는 序文과 함께 우리 趙門의 역사적 단면을 느낄 수 있다.



 
라. 족보의 발간 시기별 특기사항
평양조씨의 족보는 1994년판까지 9회에 걸쳐 발행되었다고 위에서 이미 밝힌바 있다. 이제 발간 년대별로 족보의 특기사항을 살펴보기로 한다.
1) 1723년 계묘보(癸卯譜)
가) 계묘보(癸卯譜) 이전에도 족보가 있었다고 기재되었다.
 
나) 평양 부근 상원(祥原)의 유래와 조 정승댁(趙 政丞宅) 옛터에 대한 상원군 사람들의 내려오는 말을 게재하여 평양조씨의 상징과 뿌리를 강조하였다.
 
다) 10파로 나누어 편집하였고 외손자까지 수록하였으며 페이지 순서는 천자문의 글자를 써서 찾아보기에 편리하도록 구성하였다.
 
라) 이름을 빛낸 선조를 선정하여 행적을 게재하였다.
 
마) 강안공(康安公)의 매부 정진(鄭鎭)파, 찬성사(贊成事)의 매부 영원군 안숭직(寧原君 安崇直)파 및 교리 이함영(校理 李咸寧)파, 사인공(舍人公)의 매부 김자지(金自知)파, 평원군(平原君)의 매부 전법랑 홍상부(傳法郞 洪尙溥)파 등 5인(貞肅公 玄孫女 7인임)의 매부를 派로 편성하여 수록하였다.
 
바) 계묘보 발행인 가선대부 평안도병마절도사(嘉善大夫 平安道兵馬節度使 諱 )는 사재(私財)로 족보 발간 비용을 충당하였으며 목판(木板:판목/板木)을 강진 수인사(康津 修仁寺)에 보관하고 추가로 족보가 필요한 종인(宗人)에게 인쇄하여 배부하였다.



2) 1791년 신해보(辛亥譜)
가) 20파로 분파하여 편집하였다.
 
나) 족보를 간편하게 배포하기 위하여 100여질(帙)을 서울의 종인집에 보관하였으나 1794년 화재(火災)를 입어 모두 소실(燒失)되는 사고가 있었다.



3) 1802년 임술보(壬戌譜 )
가) 1794년 화재로 인한 소실로 신해보를 배포하지 못하여 족보의 발간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나) 족보는 신해보를 원본으로 하고 일부를 추가 보완하여 4개월간(1802. 2~5)의 제작기간을 거쳐 목판으로 발간하였다.
 
다) 보판(譜板)은 고려 때부터 선조의 별장이며 영당(影堂)과 선조의 사적이 있어 조문(趙門)과 깊은 인연이 있는 청계사(淸溪寺)에 보관하기로 하고 이곳에서 족보도 발간하였다. 이와 같은 계기(契機)는 우리 조문(趙門)이 청계사를 중수(重修)하면서 넓은 장소를 확보하여 보판을 오래 보관하고 족보를 발간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청계사는 나라의 중앙에 위치하여 족보를 인쇄 보급하는데 중심지역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4) 1850년 경술보(庚戌譜)
가) 행적을 자세히 기록하도록 구체적인 방침을 정하였다.
ㅇ 관직이 낮아도 품계가 높으면 기록하고 나머지는 쓰지 않는다.
ㅇ 70세 이상을 살았을 경우 특별히 수(壽)라고 쓰고 부인의 생, 졸(生, 卒)과 누구의 딸이라고 기록한다.
 
나) 무덤의 경우 합장(合葬), 쌍분(雙墳), 별폄(別?) 등을 기록하고 비석이나 지(誌)를 쓸 때에는 글의 내용을 쓴 사람과 붓으로 쓴 사람의 이름을 함께 기록한다.
 
다) 24世~34世의 항렬자를 처음으로 지정하였다.



5) 1901년 신축보(辛丑譜)
가) 3개파의 파 이름을 개정하였다
ㅇ 참지공파(?知公派)를 첨추공파(僉樞公派)로, 군수공파(郡守公派)를 대사헌공파(大司憲公派)로 영암공파(靈巖公派)를 교리공파(校理公派)
 
나) 서자(庶子)의 기록을 삭제하여 적모(嫡母) 아래에 기재하고 적서(嫡庶)의 구분을 폐지하였다.
 
다) 배우자(配偶者) 기재는 죽은 자(死者)는 배(配)로 살아있는 자(生者)는 실(室)로 기재한다.
 
라) 35世~44世의 항렬자를 추가 지정하였다.



6) 1928년 무진보(戊辰譜)
가) 辛丑譜가 이미 발간되어 庶子의 기록을 삭제하지 못한 파(제주. 감사. 진안.첨추공 4파)의 庶子기록을 삭제하였다.
 
나) 45世~54世의 항렬자를 추가 지정하였다.



7) 1958년 무술보(戊戌譜)
가) 戊辰譜에 기재된 시조 추밀공의 행적중 “평양 先仙人 王儉 등”으로 기술된 내용은 오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삭제하였다.
 
나) 55世~59世의 항렬자를 추가 지정하였다.



8) 1979년 기미보(己未譜 : 활자본양장/活字本洋裝)
가) 조씨의 기원과 평양조씨 연원에 관계된 자료를 조사하여 정리 기재하였다.
 
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역대 명조의 사적을 한글로 번역하되 직역(直譯)을 위주로 하여 원문 밑에 수록하고 시대 순으로 게재하였으며 근대의 관직 범위를 지정하였다.
 
다) 연대는 서기로, 최근 생·졸(生·卒)의 기록은 간지(干支)와 서기(西紀)로 환산하여 기재하였다.
 
라) 딸은 혼인한 사람에 대하여 이름, 학력, 이력을 기재하고 사위는 본관, 성명, 이력을 간결하게 기재하며 외손은 삭제하도록 하였다.
 
마) 21世~23世의 항렬자를 소급하여 지정하고 4개 世의 항렬자를 개정하였다.



9) 1994년 갑술보(甲戌譜)
가) 1993년 3월 갑술대동보발간위원회(甲戌大同譜發刊委員會)를 발족하여 수보(修譜) 업무를 전담하도록 하였다.
 
나) 관직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범위를 확대하고 세분화하여 지정하였다.
 
다) 각 파별로 게재되는 후손들의 기록 순서는 후손들이 세(世)나 촌수(寸數)관계를 알기 쉽고 찾아보기 쉽도록 계보도(直略系圖)를 게재하도록 하였다.
 
라) 부록을 대폭 보강하여 족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각종 해설과 통계표 및 고려, 조선시대의 왕계, 관직의 직위 및 품계표, 제례법 등을 게재하였다.
 
마) 60世 항렬자를 추가 지정하고 10개世(대법원에서 호적명으로 쓰지 않도록 결정한 ?柏字와 뜻과 음이 혼동되기 쉬운 글자 등)를 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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