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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발자취

역사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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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사(淸溪寺)와 정숙공(貞肅公)

청계사는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 산11번지의 남쪽 태봉 자락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용주사의 말사로, 경기도 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봉은본말지》에 통일신라 때 창건되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청계사는 원래 평양부원군 조인규(趙仁規)의 별서(別墅 : 별장)였는데 1284년(고려 충렬왕10)에 사재를 들여 크게 중창하고 왕의 행운을 축원하였다. 또한 공께서는 청계사 옆에 소당(小堂)을 마련하고 이곳에서 시를 읊었다.

공은 고려 충렬왕 때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고 선충익대 보조공신 벽상삼한 삼중대광 수태위판중서문하사 상장군 평양군(宣忠翊戴 補祚功臣 壁上三韓 三重大匡 守太尉判中書門下事 上將軍 平壤君)으로 시호는 정숙공(貞肅公)이다.

정숙공이 돌아가시자 자손들이 이곳에 영당을 마련하고 공과 흥양군부인 조씨의 진영(眞影)을 비단에 그려 모시고 뜰에는 돌을 세워 그 공덕을 새겼다. 그리고 전답과 노비를 두어 제사를 받들었다. 그 후 아들 장민공(莊敏公) 서(瑞)와 부인 상당한씨, 장민공의 아우인 충숙공(忠肅公) 련(璉)과 상낙군부인 김씨와 충숙공의 아들 시중(侍中) 덕유(德裕)와 부인 고창오씨, 시중의 아들 문충공(文忠公) 준(浚)과 부인 고성이씨의 진영도 같이 모셨다.

청계사는 이렇게 조인규 가문의 원찰로서 후손들이 약 500여 년간 중창을 거듭하였다. 그리고 정숙공의 넷째 아들인 의선 대선사(義旋 大禪師)가 일찍이 이곳에 있었는데 그의 호는 순암(順菴)이며, 원나라 황제(皇帝)로부터 정혜원통지견무애삼장법사(定慧圓通知見無애三藏法師)라는 법호를 받고 원나라의 천원 대연성사(天源 大延聖寺)의 주지가 되었다. 고려에서는 복국우세 정명보조 현오대사(福國祐世 靜明普照 玄悟大師)와 삼중대광 자은군(三重大匡 慈恩君:正一品)에 봉해져 영원사(塋原寺)의 주지를 겸했다. 그러나 조선 대원군 때 도성안의 사찰을 폐하고 관청을 세우자 불교 쪽에서 이 절을 선종의 본산으로 정하였다.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이색(李穡)· 길재(吉再) 등 당대 문인들이 자주 찾던 곳이며 조견(趙견)이 한때 이곳에서 은둔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영당(影堂)이 모두 불에 탔으며 광해군 때에는 폐 세자가 이 절에 머물기도 했었는데 이때 궁가(宮家)나 세력 있는 자 들에게 많은 것을 빼앗겼다. 그 후 1689년(숙종 15년) 3월에 청계사는 모두 불에 타 백여 년 간 폐허상태로 있다가 1798년(정조 22년) “유명한 산의 오랜 역사가 있는 절은 황폐할 수 없다”는 왕의 명령(正祖戊午 以名山舊寺 不可頹廢 有朝命)에 따라 무의공(武毅公:19世)께서 총융사(摠戎使)의 직위에 있을 때 청계사 중수를 주관하고 전라좌수사 대(全羅左水使 岱) 선천부사 계(宣川府使 ), 박천군수 두(博川郡守 山斗), 창원부사 몽석(昌原府使 蒙錫), 봉산군수 화석(鳳山郡守 華錫), 명천부사 은석(明川府使 恩錫), 종인(宗人)인 장용위 명윤(壯勇衛 明胤)이 참여하여 절을 재건하였으며 넓은 시설을 확보하여 조문(趙門)의 보판 임술보(譜板 : 족보목판/壬戌譜)를 보관하고 이때부터 이곳에서 족보를 인쇄하였다.

청계사 경내에는 신라 석등과 부도조각 일부가 남아 있으며, 극락보전과 종각, 삼성각, 산신각, 수각 등 3동의 요사를 비롯해 10채의 건물이 있다. 동종(경기유형문화재 96)과 목판(경기도 유형문화재 135) 등의 문화재도 있다. 동종은 1701년에 제작된 것으로 높이 115㎝, 지름 71㎝이다. 한동안 봉은사에 봉안되어 있다가 1975년 다시 청계사로 옮겨 왔는데, 조선후기 범종 중 대표적인 종이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연꽃 줄기를 쥐고 구름 위에 서 있는 보살상 4기가 조각되어 있다. 목판은 청계사에서 판각·간행한 것으로 14종 466판에 이르렀으나 현존하는《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213이 전해지고 있다. 주변에 청계산, 국사봉, 서울대공원, 과천경마장, 관악산, 백운저수지 등의 관광지가 있다.

청계사는 지금 우리 평양조문에서 떠나 대한불교조계종 용주사의 말사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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